YD 찾아가는 새벽묵상

2019년 6월11일 (예레미야 13:15-27)
2019-06-11 05:18:10
부교역자
조회수   101
말씀제목 분명히 알아야 할 것들
말씀일 2019-06-11
오늘의 말씀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13:15)
말씀내용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인하고 꼭 알아야 할 2가지의 내용을 선포하고 있다.

1. 첫째, 내가 누구인지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계속되는 심판의 메시지 속에는 하나님의 속마음이 들어있다. 다시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래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룩한 모습으로 회복되길 원하시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 모습, 창조하신 후 처음 모습은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교제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으셔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고 선포하셨다. 하지만 그 관계는 얼마가지 않아 깨졌다. 바로 ‘죄’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죄’의 길로 달려만 나아갔다. 앞서 예레미야의 설교를 통해 계속 그 잘못된 ‘죄’의 모습을 하나님은 지적하신다. 렘3장2,3절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유다 백성들이 그들의 목적을 상실하여 음란과 행악으로 하나님의 땅을 더렵혔고, 가뭄으로 하나님이 심판을 보여 줘도 그들의 수치를 깨닫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어서 렘3장8,9절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그렇게 죄에 빠져 있다가 북이스라엘이 망한 것을 보고도 그 길을 돌이키지 않았고,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면서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죄를 짓더니 이제는 하다 하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다. 렘7장3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냐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풍요의 신 바알을 섬겼는데, 그것은 신전창녀와 매춘하는 것이 예배였다. 이것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집을 더렵혔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다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 15절, 17절에서는 그 ‘죄’의 모습을 바로 ‘교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만’은 히브리어로 ‘가바’로 ‘높다, 고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 다시 말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에서 벗어 난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이다.
소요리문답의 제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데, 그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만을 높이 올려드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고귀하게’하기 위한 ‘교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교만’의 모습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 되었는지 오늘 본문 23절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교만’으로 회복될 수 없는 불치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계속적인 교만과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굳어버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23절에 나오는 ‘구스인’은 노아의 아들인 ‘함’의 맏아들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에디오피아 사람’으로 ‘그을린 얼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미 얼굴이 완전히 까만 사람들이 다시 그 피부를 하얀색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반점을 가지고 있는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여 한 색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유다 백성들의 상태가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앞서 예레미야의 설교를 통해 계속해서 이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의 상태, 죄인된 우리의 모습을 선포하시면서 다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도 다시 죄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과 하나됨의 거룩한 자리, 하나님의 자녀됨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구스인의 피부, 표범의 반점이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한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다시 하얘질 수 없지만, 표범의 반점을 사라지게 할 수 없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주님의 보혈로 다시 살아나야하는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둘째, 경고의 끝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경고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분명한 징벌의 메시기가 이어서 선포되고 있다. 16절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 18절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 24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 26절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그런데 당시 유다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시절에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선지자라고 불린 가짜 선지자, 제사장들로 인해 유다 백성들은 ‘괜찮다’라는 잘못된 음성을 계속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심판의 경고를 목소리가 터지도록 외쳐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그 끝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곧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종말신앙이 없다는 것이다.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곧 오시겠다는 그 말씀을 중심으로 살았다. ‘마라나타,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인사말을 서로 만날 때마다 주고 받았다. 삶의 모든 것들이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된다는 분명한 종말신앙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매일의 삶 속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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