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D 찾아가는 새벽묵상

2019년 6월24일(예레미야20:1-6)
2019-06-25 09:58:23
부교역자
조회수   62
말씀제목 실패한 신앙의 모습
말씀일 2019-06-24
오늘의 말씀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렘20:3)
말씀내용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의 침체가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도 있고 내부의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영적인 침체, 신앙적인 침체가 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는 영적인 침체를 보여주는 대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이 어찌하여 이처럼 극심한 영적인 침체(depression)를 겪고 자기 생일조차 저주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세상이 그를 거부(rejection)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함께 섞여 사는 존재인데 언제, 어디서나 소외 당하니 결국 침체를 겪게 된 것입니다. 왜 예레미야는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전하라하신 메시지를 그대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축복의 메시지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고 폭력을 당하게 될 것이며 결국 유다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레미야와는 같지 않겠지만 영적인 침체, 믿음으로 말미암은 고통과 고난을 당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가, 때로는 우울증이 죄는 아닙니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침체가 신앙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인 침체가운데 신앙의 실패를 보여주는 한 사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스훌이라는 사람입니다. 비단 한 사람만의 모습이겠습니까? 모든 유다 백성의 모습입니다. 바스훌이라는 사람을 통해 신앙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힘의 원리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바스훌이라는 이름은 ‘찢다, 조각내다’라는 뜻 외에 ‘자유, 자유케 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거짓 예언자에게 주목하시는 이유는 현재 그가 예레미야에게 대하는 태도가 그의 이름을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반 선지자들 수준이 아니라 선지자 중에서도 고위층입니다. 예레미야를 가볍게 때리고 가둘 정도 같으면 그는 지상에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에게 새로 받은 이름은 바로 “마골밋사빕”입니다. ‘사방으로 두려운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방으로부터의 공포’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우리는 저 사람처럼 되면 안 되는거야 큰일 나는 거야” 그러한 인상을 심어줄 대표인물이 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유대나라 사람들은 지도층의 사람이나, 밑의 백성들이 모두 지상에서 자신의 생존의 터전을 돈독히 하는데 필요한 힘 끌어 모으는데 급급했지 결코 진정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아야 돼’라는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경,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취지를 누락시키면서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말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힘의 원리를 쫓아가면 실패를 합니다. 세상 원리로 신앙생활을 하면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2. 보이는 것을 따라 갔기 때문입니다.

6절입니다.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거짓선지자, 거짓 신앙인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 땅에 것에 연연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 종말론적 신앙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가 천국에 대해 소망을 두지 않고 이 땅에 것에 더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 구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 모두 다 세상에 남겨놓고 빈 손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거짓 종 바스훌의 재산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도 어마어마한 보물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 종들은 그 보물들이 자신들의 육과 영혼들을 붙잡고 있는 쇠고랑 줄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6절에서 말하듯이 바스훌이 바벨론에서 죽을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스훌만 포로가 잡혀가서 죽을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바스훌의 거짓 예언을 들은 자들도 모두 그와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때로는 이유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 영적인 우울증과 침체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를 통해 교훈을 얻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바스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나 남 유다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들이 진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토기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매 순간 순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라는 말씀을 잘못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능히 하지 못할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내가 아닙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힘 입어 하루를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우리의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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