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지침

2019년 목회지침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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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성경: 히 13:12-16, 합 3:2
목적문: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말한다. 수년째 들어온 말이지만, 정작 교회만이 그 긴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교육부 자녀들은 점점 줄어 들고 있고,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 전도, 봉사의 신앙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교회와 교계의 모임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성장제일주의와 기복주의, 개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는 스스로의 성장과 부흥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교회는 점점 세대간의 양극화와 연령의 고령화, 소통의 획일화로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모습은 교회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비추게 하여 교회로 오는 발걸음을 돌리게 하고 있다.

내부적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지금의 위기는 곧 쇠퇴와 침체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 가운데 세상도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곳곳의 요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 동력을 상실한 시대에 저출산과 고령화는 더욱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세대간의 갈등은 다양한 접점에서 충돌하고 반목하여 사회적 구심점을 잃어가게 하고 있다. 지나치게 다원화된 관점과 극단에 다달은 근본주의적 사고는 사회를 분열케 하고 공동체성을 붕괴시키고 있다.

이렇게 무겁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나라는 남북 문제의 작은 희망이 자라기 시작하고, 위기를 인식하는 사회 곳곳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 이에 교회도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영적 부흥을 이루며 나라와 민족의 동반자의 역할을 회복하여 교회의 참된 사명을 지키고자 한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제 103회 총회는 주제를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라고 정하였고,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은 주제로 2019년 신앙의 방향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전 3년 동안 총회는 “거룩한 교회”에 대한 주제로 목회 방향을 이끌어 왔다. 물론 여전히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거룩성”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정적인 틀 안에서만 거룩함을 머물게 할 수 없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런 탁자 위에 놓여진 “거룩”이 성문 밖에서 이뤄져야 함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그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3)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좇아가고 닮아가는 자들이다. 예수가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므로 “거룩”을 이루고자 하였다면, 그를 따르는 성도인 우리는 세상에서 거룩하여져야 한다. 예수가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자 했던 세상에서 성도의 삶과 교회의 본질을 세워야 한다.

또한 거룩하게 되기 위해 뛰어 나간 세상에서는 “영원한 도성”(히 13:14)을 바라 보아야 한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구원의 방주가 될까?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다고 말하고, 거룩한 백성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증거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다. 이곳에는 잠시 머물고 가는 나그네의 여정일 뿐이다. 그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도 물질을 쥐고 살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도 바리새인적인 신앙을 살면 영생을 얻을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으로 나아가,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에 영원한 도성이 있음을 알리며 참된 진리와 소망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세상에서 찬양과 예배로 거룩한 부흥을 이뤄야 한다. 첫째는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바른 예전을 세워야 한다.(히 13:15)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맞아 다양한 예배의 형태가 많은 교회에 영향을 주면서, 상상할 수 없이 변화된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세상이 판단하는 교회의 예배는 세속 어디에서도 경험하고 느낄 수 없는 “거룩함”을 체험하는 예배, 곧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두번째 예배의 경건함은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히 13:16)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약 1:27)이라고 증거한다. 예배 가운데 경건함을 지키고자 한다면, 예배의 형식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부흥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선언대로, 부흥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합 2:3) 주의 백성은 하나님을 올바로 찬양하며 그의 뜻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거룩한 세상을 만들어갈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부흥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흥이 시작되는 2019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표:
(1)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히 13:12-13)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세속화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가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으로 나가 고난을 받았다고 한다. 곧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세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정체에 빠져 있는 교계의 상황 속에서 교인수가 늘어난 부흥을 이뤘다고 말하는 교회는 대부분 수평이동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참된 부흥을 위해서는 불신자를 불러 모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회와 성도는 세상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단순히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 부흥이 아니라, 세상에 참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온전한 영적 부흥을 위해서라도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외쳐야 한다. 예수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지만, 도리어 회당 밖에서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이적을 베풀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2) 영구한 도성을 소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히 13:14)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을 통해 이 땅의 역사를 설명한다. 그의 분석은 단순명료하다. 영원할 것 같은 로마제국의 역사는 언젠가 멸망할지라도 주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할 것이라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이 땅의 삶을 무시하고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이 땅이 타락한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에 속한 자가 있을 것이고, 동시에 이 땅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교회가 추구해야 할 도성은 하나님의 영구한 도성이다. 문제는 영원하지 않는 이 땅에 어떻게 영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느냐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어둠과 허무로 달려가는 지상의 도성 속에 뛰어 들어가 구원과 소망의 하나님을 선포하며 새 창조의 역사로서의 종말을 세상에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바른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히 13:15)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Worship)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바른 예배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500여 년 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바른 예배가 사라진 교회의 타락과 변질 때문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과 신앙의 회복은 예배를 바로 드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선 말씀의 내용이 복음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설교자들과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물량주의와 성공주의의 설교를 좇다 보니, 교회 강단은 신앙 본질을 잃어가게 되었다. 또한 성례전에 대한 예배 영성을 되찾아야 한다. 성찬성례전은 어거스틴이 말한대로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성찬성례는 형식만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신앙과 성찬성례가 종교적 형식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성찬성례는 예수가 직접 행한 보여 주신 말씀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예배 중 기도와 찬송은 경배와 찬양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 속에서 예배의 목적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대신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흥미를 더하는 예배로 변질 되고 있다. 예배 본질에 맞는 기도와 찬양이 전해질 때, 교회는 바로 된 복음으로 세상을 울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구제와 교제로 예배의 완성을 이뤄야 한다. 예배는 제한된 시공간에서의 형식이 아니다. 삶이 예배가 되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6)는 말씀은 어떤 예배가 세상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4) 봉사와 헌신의 삶이 예배가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히 13:16)

예배의 본질적 목적이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예배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은 결코 예배와 분리될 수 없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전한다. 우리는 제물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일상의 삶이 예배가 된다면, 세상과 사람을 향한 섬김과 희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산 제물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바울은 “영적 예배”라고 칭했다. 영적 부흥을 위해 세상으로 향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은 예배를 삶의 현장으로 옮기는 것이고, 그 전환은 세상(이웃)을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예배를 통한 참된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
(1) 말씀&양육

2019년 말씀과 양육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예배자”(시 84:10)가 되는 것이다. 시편 84편의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 시대에 신앙의 중심이 주의 궁정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경우는 주님의 말씀이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의 기자처럼 말씀 속에 한 날을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기뻐하며 살아갈까? 부흥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말씀 속에 있어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말씀에 가까이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말씀을 잘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말씀을 잘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그런데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적어도 말씀에 가까이 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말씀에 잘 양육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메시지에 가까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말씀과 양육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고
② 교회의 말씀 양육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며
③ 선포된 말씀을 삶에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한다.

(2) 교육&차세대

2019년 교육과 차세대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세상을 위해 하나님을 바로 믿는 다음 세대”이다. 90년대까지 이어진 양적 교회성장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시대에 이르러 교회가 정체와 침체를 경험하는 이유는 부흥의 내적 성장 동력인 다음세대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곧 자녀 세대를 신앙과 영성 가운데 온전히 양육하였다면 지금의 교회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교회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그곳에서부터 신앙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교육과 차세대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자녀 세대를 향한 영적 눈높이의 관심을 더 가지며
② 교회학교 예배의 창조적 역동성을 회복하고
③ 가정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교육을 실행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한다.

(3) 예배&전도

2019년 예배와 전도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모이는 예배, 함께 하는 교회”를 실천하는 것이다. 양적 성장만을 바라며 영적 부흥을 이루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맞지 않다. 그렇다고 모이지 않는 것 또한 교회 공동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모여야 교회가 되고, 함께 해야 부흥을 꿈꿀 수 있다. 모이는 교회가 될 때, 제대로 흩어지는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연동교회는 모이되, 내적 영성을 충분히 키울 저력이 있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모이고 함께 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2019년 예배와 전도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우리’가 함께 하는 예배로 공공성을 회복하고
② 모이는 교회와 함께 하는 예배를 위해 한 영혼을 간절히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며
③ 참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한 해가 되고자 한다.

(4) 신앙&윤리

2019년 신앙과 윤리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복음의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의 일부분으로 세상에 드러나야 하며, 그 작은 조각의 삶이 세상에 영향력을 보여야 한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기독교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이유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기 결정권이 없었던 미성년의 자녀 세대들이 청년이 되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부모로부터 일상과 삶 속에서 신실한 신앙 양육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앙은 삶에서 나타나야 하고 믿음은 일상에서 고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와 성도는 신앙이 삶에 실천적인 고백으로 드러나야 하며 기독교 윤리적인 삶이 일상 곳곳에서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2019년 신앙과 윤리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매일 고백하고 실천하며
② 선한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독교 윤리적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5) 선교&영성

2019년 선교와 영성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마음이 따뜻한 선교, 가슴이 넓은 영성”을 실천한다. 선교하면, 십자군 전사들의 공격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의 출발은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었던 마음이 따뜻한 막달라 마리아(요 20:18)였다. 선교는 사랑의 시발점이다. 절대로 협박과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영성은 낮은 자의 품성에서 출발한다. “영성 깊음”은 교만의 단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영성은 넓은 가슴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다. 따뜻한 선교를 하고 가슴 넓은 영성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면, 부흥은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드러날 것이다.
이에 대해서 2019년 선교와 영성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우리교회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선교의 방법을 찾아보며
② 연동의 영성을 세우기 위해 더욱 겸손한 신앙이 채워지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6) 봉사&구제

2019년 봉사와 구제에 대한 연동의 비전은 “전통에 걸맞는 봉사, 교회역사의 깊이를 따라가는 구제”를 실천한다. 연동교회는 교회 역사를 비롯해 교회학교의 전통, 신앙에 뿌리를 둔 사회참여, 가난한 자를 위한 복지 목회가 널리 알려진 교회이다. 그러나 그런 전통과 역사에 맞는 봉사와 구제가 이뤄지는 교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구호와 형식이 아닌 온 교우가 동참하고 실현하는 봉사와 구제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봉사와 구제에 대한 실천사항은
① 1인 1봉사 사역의 신앙 운동에 동참하며
② 1인 1구제 사역을 실행하고
③ 교회에서 진행하는 세상을 향한 봉사와 구제 프로그램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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